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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플리카 시대


레플리카 시대오마주도, 패러디도 아니다. 리바이벌이라는 단어도 어딘가 좀 부족하다. 얼마나 똑같이 복제했느냐가 중요하니까. 레플리카(Replica). 이것이야 말로 21세기 식 ‘창조’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엔 극사실주의 그림 같다고 생각했다. ‘레플리카’라는 의미가 원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동일한 재료와 방법, 기술을 이용해 똑같은 모양과 크기로 재현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현실보다 더 적확하게 그려내야 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극사실주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정신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짧은 생각은 마틴 마지엘라의 ‘레플리카 라인’을 탐구하면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 레플리카 라인은 주로 60~70년대 해군복과 독일 군인들의 신발, 인형의 의상을 사람이 입을 만한 사이즈로 복제한다. 재킷 안쪽엔 마지엘라의 로고 대신 ‘REPLICA'라는 두꺼운 글씨와 함께 언제, 어디서 만들어진 옷을 복제한 것인지 날짜와 나라까지 분명히 표기해 둔 라벨을 붙여 놨는데 그 뻔뻔함이 뭐랄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시대에 대한 어떤 반항처럼 느껴졌다. 우리 시대에 가장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디자이너로 인정받는 그가 ’복제품‘이라는 라벨을 단 옷을 만든다는 행위 자체가 허무하면서도 결국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달까. 그건 극사실주의보다는 마르셀 뒤샹이 보여주었던 다다이스트 적인 태도와 앤디 워홀의 팝아트 정신에 가까웠다. 뒤샹은 1917년 자신의 대표적인 레디메이드 작품인 ’샘(Foundation)'을 제작한 후에도 여러 번이나 자신의 작품을 ‘레플리카’로 재현했었다. 뒤샹이 남긴 유명한 말 중 “예술가가 예술이라고 말하는 어떤 것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처럼 마지엘라도 이 복제품을 통해 자신이 창조라고 말하면 복제품조차도 가장 창조적인 옷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또 그는 고상한 미술을 공장에서 똑같은 제품을 찍어내는 것으로 전락(?) 레플리카 쇼핑몰 워홀의 팝아트 정신과 유머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뒤샹이 미술을 존재하는 것에 가치를 두었다면 워홀은 판매가 목적이었다. 그런 부분에선 마지엘라의 ‘복제품’들은 뒤샹의 ‘복제품’만큼 팩토리에서 생산되는 ‘복제품’과도 닮아 있다. 그건 단순히 옷을 만드는 기술이나 너도 나도 떠들어대는 얄팍한 크리에이티비티와 조금 다른, 정신적이고 본질적인 행위를 보여주는 예술적인 태도다. 한편으론 매우 세련된 장난처럼 느껴진다. 뭔가를 다 보여주는 듯 하지만 결국엔 완벽하게 감추고 있는 신중함, 엄격한 이론을 넘어선 천진한 미학 같은 것. 그런 그에게 복제품에 대한 집착을 ‘아이디어 고갈 때문이냐?’고 묻는 건 실례다. 샤넬과 에르메스, 고야드, 루이 비통처럼 거대한 아카이브를 갖고 있는 브랜드들에게 ‘레플리카’ 열풍은 반가운 흐름이다. 하우스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아이템들은 탄생을 기념하는 해에 원본과 똑같은 디자인으로 부활시키며 여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기도 하니까. 최근엔 패션과 트렌드의 주기가 짧아지면서 사람들은 불과 10년 전 아이템이 다시 등장해도 향수에 젖는 표정을 짓는다.(얼마 전 오버 사이즈 다시 등장한 펜디 바게트 백처럼) 그런 마당에 50여년이 훌쩍 넘는 제품들이 다시 복제되어 나온다면 얼마나 감동적이겠는가. 빈티지 아닌 빈티지를 갖는 기분이겠지. 샤넬은 몇 시즌 전 탄생 50주년을 맞은 샤넬 2.55 백을 초장기 모델과 똑같이 복제한 제품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바 있고, 2.55 백에 이어 투톤 플랫 슈즈와 안티 뉴룩 재킷을 원본과 똑같이 복제하며 고전에 대한 예찬을 계속하고 있다. 에르메스는 에르메스 스카프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카레’를 사이즈만 줄여서 그대로 복제했고, 최고의 안경 브랜드 아메리칸 옵티컬은 일본의 브로스 재팬사와 기술을 제휴해 1960년대 아메리칸 클래식을 복원한 제품들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세계 최고의 시계 박람회인 스위스 바젤 페어와 SIHH에서도 때 아닌 ‘레플리카’ 바람이 불었다. 한 해의 세계 시계 산업과 트렌드의 방향을 결정하는 이 두 페어에선 '고전의 재해석'이 가장 강력한 화두로 등장했다. 카르티에, 롤렉스, IWC, 브레게 등 대체로 1백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가진  고급 시계 브랜드들조차 원본 시계를 완벽하게 복원한 레플리카를 선보인 것이다. 브레게의 경우 1783년 마리 앙투아네트의 추종자가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에게 특별 주문해 만든 것으로,3년 반 동안 부품 하나하나까지 모두 복원해 낸 시계인 ‘앙투와네트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포켓워치’를 선보였고, 론칭 140주년을 맞은 IWC는 'IWC 빈티지 컬렉션 주빌리 에디션 1868~2008'이라는 빈티지 컬렉션을 론칭했다. 이 빈티지 컬렉션은 현존하는 IWC의 최초 모델들을 그대로 재해석한 6개의 시계들을 모았다. 최초 모델들의 외형만 본뜬 게 아니라 시계들이 갖고 있는 시대적 의미와 기술적 의미까지 재조명 한 것. 시계 브랜드들에서 불고 있는 레플리카 바람은 마틴 마지엘라와는 조금 다른 개념일 것이다. 이 역사적인 시계 브랜드들은 마지엘라 식의 예술적인 태도보다는, 온고지신의 미학을 여러 방면으로 모색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고전과 처녀작, 원본을 그대로 복제하는 레플리카가 온당해진 지금, 느닷없이 몇 년 전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의 표절 시비가 떠오른다. 빈티지 의상을 그대로 ‘복제한’(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항변 했지만) 유기적인 톱으로 멋진 패러디라는 칭송과 모사꾼이라는 지탄을 동시에 받은 그가 지금 이 레플리카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게스키에르가 지금 그 옷을 만들었다면 패러디니 오마주니 하는 궁색한 변명 대신 이런 예술적인 이유를 댈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옷은 레플리카예요. 21세기 식 창조죠. 표절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이건 매우 정신적이고 본질적인 행위라구요!”


Harper's Bazaar 2008년 6월

글/ 오선희

사진/ 김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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